logo

Contractor - (8화)

2011.01.23 12:36

라면국물 조회 수:24411

==한강호텔 1107호==

 

"내가 이 방 전담인데....그렇게 오래 있으면서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씨... 너 그러니까 나한테 안되는거야. 알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 소정은 연신 헛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헛소리 속에는 진실이 담겨있었고, 은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조심헀건만 어쩄거나 자기 정체를 안 사람이 나왔다. 위험했다.

 

꽤꽥 소리 지르다가 진짜로 쿠쿨 잠들어버린 소정, 은수는 침대 밑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소정의 머리를 향해 겨눴다.

살려면 어쩔 수 없다.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다.

이윽고.....

 

한 발의 날카로운 쇳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의원 사무실==

감상천 의원은 사무실에서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의 눈빛은 부드럽지만 매서웠고, 그윽했지만 살벌했다. 친절과 교활함의 미묘한 선에 자리잡고 있는 시선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들어왔다. 감상천 의원은 벌떡 일어나며 그를 맞았다.

 

"한동갑 의원. 어서 오시오"

"감의원이 날 찾는다고 하더니 직접 불러내기까지 하고.......허허.. 어쩐 일이십니까?"

"이렇게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한의원. "

"아. 됐소이다. 할 말이 뭐죠?"

"그럼 거두절미 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시는게 어떻습니까?"

"아니...이번 선거에 내가요?"

"그렇습니다. 우리 민의당에서만 후보가 없는데...한의원만이 후보자격이 되더군요. 어떻습니까? 이번 선거에 출마해보는 것이......"

"아.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 다른 당들이 워낙 거셉니다. 게다가 지금은 여소야대. 즉 야당이 더 세력이 큰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우리가 아무런 무기없이 선거에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란 걸 모르시오?"

"우리에게도 무기는 있습니다"

"지금 야당의 자민당은 백호그룹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거 아시잖습니까. 그 돈이 그대로 그쪽으로 흘러들아갔고, 이미 판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는 별 승산이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다른 당원들의 생각....."

"우리에게도 돈은 있습니다. "

"돈이라니요?"

"제2금융권...아시죠?"

"대부업체....말입니까?"

"거기에 있는 자본이 엄청나단건 한의원도 잘 알것이요"

"그거야 잘 알지만......그런다고 그들이 우리 손을 들어주겠소?"

"잘 압니다. 그래서 한의원이 절 조금만 도와주신다면..이번 공천. 한의원이 받게 해주겠소"

"...... 다른 원하는 것은?"

"공천을 받고 선거에서 승리하고 난 다음에 말하겠습니다. 그때가서 뭐든 한가지 승낙해주겠다는 각서 한장만 써주십시오."

"각서요?"

"대부업체들의 지원을 받고, 공천을 받도록 한뒤, 선거에서 승리. 이 세가지 조건을 전부 들어줬을때 해당하는 겁니다. 이중 하나라도 없을 시에는 그 각서는 무효가 될 것입니다."

"감의원이 이번 선거에 왜 이리 목숨을 거는지.....여쭤도 될까요?"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어주실 겁니까?"

 

한동갑 의원은 골똘히 생각해봤다. 하지만 이번 선거. 즉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앞으로 있을 총선 및 대선에서 판도를 뒤지는 것도 가능하기 떄문이다. 그렇지만 너무도 열세였다. 야당은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국가 신임도가 땅에 떨어진 지금 여당의 입지도 같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감상천 의원이 달콤한 제안을 한 것이다. 그것을 들어줄지 말지는 굉장히 고민되는 것이었다.

열세인 현재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감상천, 하지만 누가봐도 부질없는 짓.

결국 한동갑 의원은 결정을 내렸다.

 

"실패했을때 내게 돌아오는 리스크가 없다면 하겠습니다. 각서 한장 내드리지요"

"고맙소. 한의원"

 

각서를 써내려가던 도중,  한의원은 남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공격적인 방향으로 행동하기로 한 지금 그런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어떤 부탁이든 하나를 반드시 들어주겠다는 각서를 작성한 한의원은 감상천 의원과 악수를 나누면서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믿음직 스럽다는 미소를 지어보냈다. 도무지 꿍꿍이를 알 수 없었다.

 

한의원이 자리를 나가고 이어서 비서관이 들어왔다.

 

"의원님."

"응?"
"정말 한의원에게 이번 공천을 받게 하실 겁니까?"

"그래. 이번 지역구 선거는 한의원이 출마할꺼다"

"의원님은요."

"난 아직 그렇게는 못해. 자격요건도 안되고 또 이 지역구로선 내 성에 안차"

"그렇다면......."

"두고봐라. 곧 재밌는 상황이 벌어질꺼다"

"....?"

 

 

==경찰서==

"그 사건에선 손떼라고 했을텐데....."

"하지만 반장님..이정도 근거라면 한번 수사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아니...전혀 그렇지 않아"

"하지만 피해자2의 몸에서 피해자1의 지문이 검출되었다는건"

"우연이겠지. 그 정도 우연은 우연도 아니라는거 자네도 알잖는가"

"그렇지만 좀 더 수사해본다면...."

"정 그렇다면 허락은 해주지. 허나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꺼야."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양쪽 피해자 유족들이 시신을 반환해 줄 것을 요구했고, 아무런 증거도 못 찾은 이상 반납이 결정됐네..아니 어쩌면 지금 반환이 끝났을 수도 있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움직이겠습니다."

"좋을대로 하게..."

 

반장의 퉁명스런 말투 속에는 응원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그만큼 반장도 억울하고 속이 타는 것이다.

 

"환이. 미나. 지금 즉시 나 따라와."

"......네네..."

환과 미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석을 따라갔다. 태석의 자리에서 태석은 두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각자 피해자 한명씩 시신 어떻게 됐는지 얘기 들어보고 아직도 반환이 되지 않았다면 30분만 늦춰달라고 해줘"

"하지만 선배님. 그 사건은......."

"마지막 승부수다.!"

"......알겠습니다"

태석은 두 사람에게 각자 연락할 것은 지시하고 자신은 사건파일을 처음부터 다시 뒤져보기로 했다. 설사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봐 중요한 부분은 따로 메모까지 해가면서 그야말로 이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약 10분후 두 사람에게서 결과가 보고되었다.

 

"선배님"

"아 어떻게 됐어?"

"바텐더 시신은 이미 수습했고, 다른 시신은 아직 수습전이라고 합니다. 내일이 화장이라는군요."

"그렇다면 그 시신에 모든 것이 걸려있겠군. 환이 넌 재수사 신청하고 수사영장 발부받아서 부검실로 와. 그리고 미나는 나랑 함꼐 가자"

"알겠습니다."

 

세사람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부검실==

검수복을 입은 환과 미나는 시신을 다시 한번 쭉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워낙 관찰력 없는 미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태석은 눈에 불을 켜고 뭐 하나라고 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뭘 찾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뭔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도 어불성설이었다.

다시 한번 검사결과보고서를 쭉 지켜보던 환은 한가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검시관...잠시 와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여기 피해자 왼손에 누군가의 지문이 묻어있군요."

"아. 그거 말인가요?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어쩌다 손을 맞잡았던건지, 아니면 우연히 스쳤던 건지는 잘 모릅니다만 살짝 묻은 정도입니다. 편의점에서 거스름돈을 건네받을때 점원의 손과 스치는 그 정도에 불과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데이터베이스에 없다는게 무슨 말이냐고요"

"아. 지문이 검출은 됐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직 주민등록신고를 안했거나 체류중인 타국 사람일수도 있고 어쩌면 전산오류일수도 있고요.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직접적인 사인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군요"

 

간만에 뭔가 잡았다고 느낀 태석.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감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이 지문의 주인이 이번 사건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그것이 남은 해답이긴 하지만 제 생각엔 1% 미만입니다. 어쩌다 스친 정도라면 안면도 없을테고 동기는 더더욱 없겠죠. 게다가 신원이 확실치 않은 사람이니 총을 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총을 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불법적인 거래를 통해 얻어낸 총이라면?"

"불법적인 거래요?"

"아직 등록이 되지 않는 한 사람이 불법적인 거래를 통해 총을 얻었다. 그리고......빵~~~~"

"하하....그게 형사님 추리인가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동기는요?"

"......"

"사건 수사는 제 담당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형사님. 지금 형사님 추리는 뭐랄까...너무 과장되어 있다고 하고 싶네요. 추측과 억측만이 난무할 뿐입니다. 수사의 기본도 모르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형사님 의견으로는 어느것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증거에 짜맞춘거 밖에 되지 않잔항요"

"핳...그러네요."

"다른거 궁금하시면 나중에 또 여쭤보십시오."

 

검시관은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방을 나섰고, 태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다 걸린 지문이었는데 역시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때 환이 뛰어들어왔다.

 

"선배님..."

"응?"

"시간이 다 됐다고 합니다. 이제 유가족이 시신을 인수하러 올꺼래요"

"서둘러 정리해야겠군. 미나야. 넌 가서 아까 묻은 그 이름모를 지문이 또 있는 곳 있나 더 알아보고 와줘. 태석이 넌 나랑 여기 정리 좀 하자"

"네...."

간만에 눈에 광채를 띄고 일하는 태석의 모습에 두 후배는 살짝 주눅이 든 채 지시에 따르게 되었다.

환은 알고 있었다. 태석이 저런 눈빛을 하고 일을 하면 반드시 뭐 하나는 이뤄내는 사람이란걸...

이미 이 사건에 대해 대강의 파악이 끝났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강도는 다르지만 미나도 하고 있었다.

 

 

==한강호텔 1107호==

 

소정은 자기 옆에 있던 베게가 구멍이 뚫린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자신의 목숨은 다행이 붙어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지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여기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일단 침대에 누워있느니 만큼 소정은 자신의 몸을 둘러봤다.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서 다행히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은 듯 했다.

 

"으....근데 여기는 어디지?"

 

소정의 소리를 들은 것인지 은수가 그녀에게 생강차 한잔을 건네며 말했다.

"이번엔 제가 마실 걸 갔다주게 됐군요."

"아....손님"

"이거 먹고 속 차린다음에 근무하러 가야하지 않겠어요?"

"......네. 고마워요."
소정은 생강차 한잔을 홀짝거리며 마셨다.

은수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는 소정의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뜨거운 우유를 호호 불며 마시는 모습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은수는 자기도 모르게 소정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소정은 그런 은수를 슬며시 쳐다봤다.

하지만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은수는 모든 걸 덮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소정은 묻고 싶었다.

그러나 함부로 물어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 편안했지만 너무도 편안했기에 밀려오는 불안감, 그리고 실수를 했을 것만 같다는 불안함에서 오는 소심함은 그녀의 말문을 모조리 막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생강차는 바닥을 드러냈고,  은수는 소정의 잔을 든채 주방으로 가서 갈무리르 시작했다.

소정은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사실 소정은 은수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오 며칠 전 은수의 방을 정리하다가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조금씩 그를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계속 그를 내심 피해왔었는데, 이젠 그럴수도 없게 되었다.

 

"저기...손님"

"네"

"제가...여기 어떻게 왔어요?"

"어떻게는요. 문으로 왔죠."

"아니....그럼... 제가 어제 여기서......뭐 실수라도...."

"어제 뭐 큰 실수는 없었어요. 신경쓰지 마세요.."

 

은수는 내심 좋은 웃음으로 포장하며 말했다.

소정은 고개를 돌려 베게를 봤다. 구멍이 난 베게...하지만 칼로 낸 구멍은 아니었다.

 

"제가 어제 당신의 정체에 대해 말하던가요?"

 

은수는 갈무리 하던 손을 멈췄다. 역시 저 여자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소정은 눈을 감았다.

아마 자신을 죽일 것이다. 하지만 죽을때 죽더라도 이것만을 알고 싶었다.

소정이 눈을 뜨자. 그 앞에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은수가 있었다.

 

"우리 할 말이 많은 거 같죠? 어때요?"

소정은 자신의 직감이 맞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선술집. 박하나무==

이곳에서 감상천 의원이 식사를 시켜두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웬 노인 하나가 선술집을 찾았다. 그 노인은개량한복을 추구하는 사람 답게 도포자락에 버선을 고수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한식 전문점인 박하사탕의 분위기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양복을 입은 감상천과 한복을 입은 노인이 대면하자, 방 분위기가 아주 엄숙해졌다.

 

"안녕하시오. 감상천이오"

"선우갑이오. 절 왜 보자고 하신 거요. 이곳까지"

"이곳은 선우갑 영감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고 들었소만...."

"그렇소. 이곳이 내 집이지"

"집이 좋군요. 역시 선우갑 선생님은 굉장한 부호이신가 봅니다."

"저랑 돈문제 때문에 이곳에 온 건가요?"

"......그렇소"

거두절미 하고 치고 들어오는 선우갑의 말에 감상천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정리한 감상천 역시도 빠르게 대응했다.

"난 대부업자요. 내게서 돈을 빌려가면 이자는 얼마를 쳐줄 생각이오"

"이자라......원하는대로 드리겠소"

"의원이시라면서 어째서 제게 까지 돈을 빌리는 것이오. 혹시 이번 선거 때문이오?"

"그렇소. 선생님은 역시 혜안이 있으시군요."

 

백발이 성성한 선우갑 영감은 감상천 의원에 말에 조금씩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반응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아. 만약 그런 것이라면 다른 데를 찾아가 보시오. 난 정치와는 연관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오"

"...... 선생님 절 도와 주신다면 이자는 원하는대로......"

"설사 10배의 이자를 약속한다고 해도 수락할 수 없소, 가보시오. 감의원. 난 정치와는 연관되고 싶지 안핟고 했소"

".......알 알겠습니다. 이 감상천. 좋은 말 듣고 가는군요"

"내 거절 의사가 좋은 말이라니...그대도 참 독특하구려, 먼길 오셨으니 여기 식사는 내가 대접하리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우갑의 이런 행동에 살짝 당황은 했지만 이내 웃음을 지어보이는 감상천은 선우갑 영감의 행동 하나하나를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감상천은 대기중이던 비서를 깨워 이동을 하려했다. 차에서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던 비서가 은근히 감상천에게 물어왔다.

"의원님. 이야기는 어떻게 됐습니까?"

"거절당했어?"

"네?"

"너무 놀랄 것 없다. 예상했던 바니까.......이 영감은 이제 됐고, 그곳을 찾아가 보자"

"알겠습니다. 의원님"

 

감상천 의원을 태운 차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