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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ctor - (2화)

2010.12.07 05:59

라면국물 조회 수:24203

=한강호텔 1107호=

 

은수는 깨지는 듯한 고통에 못이겨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벌써 해는 높이 떠 한낮임을 알리고 있엇고,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젠장...내가 얼마나 잔거지?"

은수는 꺠지는 듯한 고통을 감수한 채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호텔을 내 집이라 생각한지라  후줄근하게 입고 다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공공장소이니 만큼.......

그리고 호텔 룸서비스를 불러 식사 하나를 주문하고 쇼파에 앉았다.

잠시 후 담당직원인 소정이 식사수레를 끌고 은수를 찾아왔다.

"주문하신....식사입니다. 손님. 더 필요하신 것 있나요?"

"아. 오셨네요. 이쪽으로 가져다 주십시오."

은수는 특유의 정중한 태도로 소정을 안내했다.

식사 세팅을 마친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은수 옆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식사 세팅 마치셨으면 내려가셔도 좋아요. 옆에 서 있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손님은 오늘부터 VVIP 이십니다.  저의 첫번째 VVIP 손님이시니 옆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거에요.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VVIP?"

"그렇습니다. 장기투숙 하신지 1년이 넘으신데다가 한번도 연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충분한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래도....너무 부담스러운데......."

 

VVIP라며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소정. 그리고 그런 소정이 내내 신경이 쓰이는 은수였다. 하지만 아직도 숙취를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그런데 신경쓰기 보다는 식사가 더 시급한 문제였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은수는 식사와 함꼐 소정을 내려보냈고, 깨지는 듯한 머리를 감싸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갑자기 바뀐 태도에 뭔가를 물어보려 했던 은수는 자신이 묻고자 하는 품목까지 잊고 말았다.

모든 사정을 종합해 보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은수는 인터폰을 들어 다시 한번 주문을 했다.

"점심때라 그런지 출출하군요. 식사를 하나 더 주문하고 싶습니다. 샌드위치 2개랑 커피 부탁해요"

 

한강호텔은 등급이 높지는 않지만 나름 서비스에 충실한 호텔이기에 평판은 좋았다. 장기투숙객이 많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 작은 서비스마저도 충실이 이행하는 서비스는 2014년부터 시행된 신개념 서비스이지만, 아직 많은 호텔이 인건비를 이유로 채택하고 있지 않는 사업수단이었다.

다만 한강호텔은 이 서비스를 최초로 개시함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룸서비스 뿐만이 아니다. 장기투숙객의 경우, 매니지먼트를 할 수 있는 담당직원을 붙이는데 담당직원의 경우는 손님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은수의 담당직원 소정의 경우는 단 한번도 은수에게 나쁜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았다.

때문에 소정은 은수를 거의 날마다 보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오늘 처럼 하루에 2번. 그것도 연달아 주문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대부분 식사를 혼자 해결하거나 하던 은수였는데, 오늘과 같은 일은 처음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잠시 후 역시 작은 쟁반위에 샌드위치 2개와 커피 한잔을 들고 소정이 올라왔다. 은수는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들었다.

"아......소정씨....."

"네. 손님"

"오늘은 하영수 영감이 안 보이던데....어디 가셨나 보죠?"

"아. 하영수 손님께서는 어제 갑자기 해외에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오늘부로 투숙을 중지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짐은 알아서 처분해도 좋다고 하셨고, 선입금 된 금액도 돌려주지 않아도 좋다고 하셨어요"

"투숙 중지요?"

 

하마터면 그럴리가.....란 말이 새어 나올 뻔했다. 은수는 순간 자신의 의지가 많이 약해젔다는 것을 직감하고 뭔가 조치를 세워야 겠다고 느겼다.

"아. 영감님이 직접 말했나요?"

"아니요. 팩스로 남겨주셨어요. 워낙 시급한 사항이라 들을 여지도 없었다고 하시는군요. 그래도 현재 우리 직원이 짐을 처분하기 위해 옆방에서 조치 중입니다"

"......그렇군요. 자. 샌드위치 하나.....어때요?"

은수는 소정에게 남은 샌드위치 하나를 건넸다.

"어머....아니. 이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텔 물품을 제가 먹을 수는 없어요. 규정에 어굿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사드리는 걸로 치죠. 그러면 문제 될 것 없지 않습니까? 돈은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

소정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샌드위치 하나를 집어들고 씹어 넘기고 말았다.

그런 소정의 모습에 잠시 웃어 보인 은수는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고민으로 양껏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정이 물러가자, 은수는 침대에 누워 차근차근 모든 생각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그 영감이 자살하고 나서 사신 이야기를 하자마자 사신이란 놈이 튀어나오고, 별안간 내가 VVIP가 되는 것도 모자라서 하영수 영감이 죽은게 아니고, 외국으로 떠났다라.....이거.....뭔기 있는 거 같은데.......'

소정의 말에서 이렇다 할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전부 모였다. 하지만 그걸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모든 것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 뿐이었다.

 

=직원 대기실=

속옷만 걸친채 유니폼에서 사복으로 갈아입는 여직원들. 이미 여직원들 사이에서 소정은 인기 만점의 선배이자 후배였다.

나이는 조금 많은 편이지만 여전한 동안에다가 싹싹한 매력까지 갖추고 있어 손님한테서 인기 만점이었고, 동료들에게도 능력 있지만 으스대지 않는 겸손한 성격에 평판이 좋았다. 그런 소정이 요즘 VVIP를 맡게 되었다고 하자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몸에 받게 되었지만 그 마저도 포용하고 마는 대인배가 바로 소정이었다.

"어머. 기집애. 오늘은 연타석으로 2번이나 갔다 왔네. 그 손님 어떻든?"

"선배. 정말 부러워요. VVIP 를 맡게 되시다니"

"비법 좀 알려줘요. 저도 결혼해야죠"

동려들과 후베의 쉴틈없는 질문공세에 일일히 웃음으로 화답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려던 소정.  그들과 이런 저런 잡담을 하는 와중에 소정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신호음을 내기 시작했다.

"어머. 소정선배. 남친도 있나봐요"

"일에도 성공, 사랑에도 성공, 부럽다 애"

"그만들 못해?? 나 폭발하는 거 볼래. 앙?"

한번 버럭하고 말았지만, 애교가 잔뜩 남긴 그녀의 호통에 모두들 찔끔 놀라는 척을 하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을 보니 소정은 그래도 이들들은 믿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받아들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전화기 저쪽에서는 젊지만 투박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습니까?"

"딱히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

"VVIP와 하영수 영감에 대해서 묻지는 않던가요?"

"하영수 영감에 대해서는 한번 물어보던걸요. 하지만 VVIP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럼....약속된 보수는 지급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전화가 끊기자 소정은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바라봤다.

서비스 하나만 해주면 엄청난 거액을 준다는 말에 현혹되어 한 남자의 계약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서비스란 바로 고객의 일상을 보고해 달라는 것. 분명히 규정에는 어굿나지만 신상명세를 빼내 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일상생활만 알려 달라는 것이었기에 규정으로 치고 들어갈 필요도 없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소정은 뭔가 꺼림칙 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107호=

은수는 아직도 귀신에 홀린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에서야 생각난 것이지만 바텐더가 자신을 사신이라고 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났었지만 지금은 아주 또렷하고 확실하게 기억됐다. 사신이라......대체..무슨 의미일까?

그때 노트북에서 또다시 콜을 알리는 알람이 요란하게 울려펴졌다.

노트북을 가동시키고 접선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은수. 저편에서 다시 계약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K - <하영수 영감건 수고했다. 곧 입금하겠다?

 

은수는 잠자코 있었따.

 

K  - <Y. 아직있나?>

Y - <말하라....>

K - <이번엔 크다. 20억 짜리 계약이다.>

Y - <계약조건은?>

K - <구매자제거, 디스크 회수, 표적제거>

Y  - <자세한 정보는?>

 

은수의 질문에 대답대신 여러 파일이 전송되기 시작했다. 노트북에 연결된 프린터기가 요란하게 전송된 정보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은수는 습관처럼 일을 수락하는 자신의 몸에 저주를 내리면서 차분히 일을 진행시켰다.

출력된 정보에 모든 관심을 쏟으면서 은수는 잠시 의아했었던 지난 일들을 잠시 제쳐두기로 했다.

 

출력된 정보에는 구매자과 표적에 대한 정보가 출력되어 있었고, 그들의 접선내용까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은수는 이미 접속이 끊어진 K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체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알아내는 거지? 나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으려나?'

 

==한 하숙집==

정돈되지 못해 산발한 머리에 근육질의 남자가 노트북에다가 대고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조금 전 누군가와 대화를 했었던 듯. 아직 채팅 프로그램이 가동중이었지만, 이미 상대가 접속을 끊었기에 대화내용은 남지 않았다.

피곤했다. 그냥.......욕지거리를 내뱉는 것 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젠장. 그냥 일거리만 던져주고 싹 빠지는 군. 날 뭘로 보고'

 

이 근육질의 남자는 한참 욕지거리를 내뱉다가 노트북을 끄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한쪽 벽에는 웬 유니폼이 걸려있었는데, 그 유니폼의 가슴에는 그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