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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ctor - (1화)

2010.11.28 05:12

라면국물 조회 수:24356

우중충해 보이는 탁자. 밖에는 어스름 땅거미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그런 창밖을 바라보며 한 남자가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근에 일이 잘 안풀렸는지, 얼굴 자체에 힘든 일상이 그대로 표현되는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반바지 차림에 런닝셔츠.....빈곤해보이기 짝이 없는 패션이었다. 턱수염을 며칠째 깍지도 않았는지 너저분하게 나 있었는데 뭐 딱히 볼만한 것도 없었다. 눈빛은 흐리멍텅하고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텔레비젼 하나 없는 그야말로 없어보이는 것은 모조리 갖춘 남자가 그저 냉수 한잔을 컵에 받아들고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딩~딩~

 

흘려듣기에도 귀가 찢어질 듯 날카로운 소리가 남자의 귓전을 때렸다.

"누구시오"

걸쭉한 목소리가 집안을 감겼다.

"최태석씨?"

"그렇소만"

"잠시 문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태석은 느릿느릿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 밖에는 후드점퍼를 쓰고 있는 꽤 말끔한 인상의 남자가 서있었다.

태석은 그를 한 눈에 알아봤다.

"양은수. 자네가 여기 어쩐일인가?"

"선배.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만 밖으로 나가시죠"

"......잠시만 기다리게나"

태석은 문들 닫고 서둘러 옷을 입었다. 하지만 태석은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양은수. 그가 긴 말장화를 신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 근저 개울가==

태석은 이제서야 은수가 말장화를 신고 나온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은수는 그를 이상한 곳으로 데리고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젠장. 대한민국에 언제 이런 늪지대가 생겼지?"

은수는 아까부터 말한마디 하지 않고 있었다.

 

철퍽철퍽철퍽

찰방찰방찰방

 

구두가 일으키는 거친 물살 소리와 말장화 특유의 조용한 물살가르는 소리가 대조적으로 들리며 태석와 은수는 점점 조그만한 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근처는 이미 그 누구도 돌아다니지 않는 후미진 곳이 되어버렸다.

태석은 순간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아니....실감했다.

"자네가 날 찾아왔을떄 내가 직감하지 못한건 아니네만.....벌써 이렇게 되다니...나도 참 운이 없군"

"......"

"자네 입이 얼어붙기라도 했나? 말 한마디 해주면 어디가 덧나?"

"......"

"젠장...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군"

투덜거리면서도 태석은 점점 은수에게 이끌려 더욱 후미진 곳으로 가고 있었다.

은수와 태석은 이미 삭을대로 삭아 교각만 겨우 남아있는 다리 밑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미 통행금지가 되어버린 곳이란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은수는 지금껏 잡고 있던 태석이 어깨를 놓아버리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재빨리 품에서 권총을 꺼내 격철을 당겼다.

철컥..

"이봐. 은수. 천천히 좀 하지."

"......"

"그래. 이 땅은 이미 무법천지야. 하지만 자네도 그 덕에 먹고 사는거 아닌가?"

"......"

"나도 멀쩡한 사람들 좀 죽이고 다녔지. 양은수 자넨 그렇게 안하지? 원칙이 분명하니까.......그 밀어먹을 놈의 원칙..."

"......"

"젠장.....젠장....젠장...젠장"

흐느낌과 동시에 들려오는 안타까운 탄식소리. 하지만 은수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채로 굳어있었다.

하지만 태석은 후두부에 가까이 있는 총구의 느낌이 자연스레 몸이 스러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나....난.....청부업자야. Conrrator 라고....난.....난....."

"......"

은수는 여전히 냉담한 눈초리였다. 하지만.....

은수는 품안에서 또 다른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 탄창을 뺴버렸다.

탄창을 뺴버린 외로운 권총 하나. 은수는 그 권총을 태석에게 넘겨줬다.

"마지막 한발입니다"

"...... "

태석은 조용히 권총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기회를 준다.

동료를 목표로 삼게 된 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였다.

"정말 고맙네. 은수....먼저 가서 기다리지..."

태석은 점점 관자놀이에 권총을 갔다대기 시작했다.

"저승에서....저승에선 우리 신나게 놀아보자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온 강가에 울러펴졌다. 하지만 그 소리 역시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태석은 강물 위에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몸은 물살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은수는 이 모든 것을 보고 머리를 감싸며 나지막히 신음하고 있었다.

"휴우~~~흐음"

 

은수의 눈은 외루옴 그 자체였다.

 

 

==한강호텔 1107호==

은수는 젖은 몸을 말리고 투숙중인 호텔방으로 들어왔다.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모텔과 다를바가 없을 정도로 싼 호텔이었다.

고급 식기도구 따윈 없었다. 그저 불편하지 않을 침대와 도시 전경이 얼추 비치는 큰창. 그리고 샤워시설과 조그마한 부엌이 전부였다.

아. 창 앞에는 은수가 자비로 구입한 유리재질의 책상과 나무의자가 있기는 했다. 창이 꽤 큰지라 채광도 좋았다.

 

한껏 씻고 난 뒤의 은수의 몸은 멋지긴 않아도 근사하긴 했다. 온몸에 잔근육이 붙어있는 균형잡힌 몸매. 식스팩은 없어도 쏙 들어간 복근. 굵직한 팔다리. 넓은 어깨. 꽤 괜찮은 몸매였다. 그러나 눈빛만은 여전히 외로움만을 먹고 살았는지, 한없이 외로워보였다. 평온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극도의 외로움. 게다가 그의 왼쪽 눈에는 꽤 상처가 깊었다. 왼쪽 눈밑에 있는 상처에 그의 날카로운 인상이 더욱 사납게 비치기도 했다.

호텔 여직원들은 그의 눈빛만을 보고 지례 겁먹기도 했었다.

 

도시의 전경이 비치는 창은 이미 내리는 빗물로 인해 엉망이 되어있었다. 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 때문에 창밖을 내다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은수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다는 듯, 노트북 컴퓨터 전원을 켜고 화면이 돌아오는데만 시선을 집중했다.

몇초 지났을까, 노트북 화면이 서서히 떠올랐다. 윈도우10의 메인 화면이 보였다.

하지만 아이콘은 단 세개. 내컴퓨터와 휴지통, 그리고 harrison 이란 프로그램만 세팅되어 있었다.

은수는 주저없이 해리슨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비밀 코드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뜨고, 은수는 뭔가를 입력했다.

 

잠시 후 모든 화면이 사라지고, 검은색 화면에 두명의 채팅만이 강조되어 나왔다.

은수의 상대가 메시지를 입력했는지 화면에 출력되어 나왔다.

 

K - <기사를 봤다. 수고했다>

Y - <보스 입금은?>

K - <내일 계좌로 입금될것이다>

 

"그렇겠지. 이 망할 녀석"

은수는 나지막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K - <한건이 더 있다. 보수는 3백

Y - <계약조건은?>

K - <할껀가?>

 

은수는 잠시 망설였다.

 

K - <할껀가? 말껀가?>

Y - <하지...>

K - <이런 시시한 일에도 손을 대는군>

Y - <계약조건은?<

K - <표적제거, 기간은 3일>

Y - <정보는?>

 

화면이 점점 어두어지더니 사진 몇장이 디스플레이 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화면 밑으로 K의 태칭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K - 이름. 하영수. 나이 72세. 여기까지만 알려주겠다.

Y - 충분하다.

K - 기간은 3일이다.

 

노트북과 연결되어있는 프린터기에서 뭔가가 인쇄되기 시작했다. 방금 받은 정보인 하영수 노인에 대한 정보였다.

은수는 그 자료들을 보며 날카로운 눈빛을 빝내고 있었다.

그리곤.....

 

"젠장...이 녀석 대체 무슨 수작이지?"

 

--서울 중앙 경찰서--

 

굉장히 활달하 보이는 형사 하나가 이곳저곳에 인사하며 부산스럽게 형사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야. 까불이. 오늘도 한건 했냐?"

"뭐 작은 날치기에도...달리기도 느린게 제 앞에서 날치리를 하더라고요. 잡아놓고도 얼마나 허무하던지."

"나 실적 없는데. 그 녀석 내가 가져도 돼?"

"네. 지금 오순경이 조서 꾸미고 있을꺼에요. 수고 좀 해주세요. 선배님"

"수고는....고마워"

 

꽤 날라리 같은 두 형사의 대화에 이미 경찰서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일명 까불이라고 불리던 그 형사가 형사실에 들어오기 까지는....

형사실에선 모든 형사가 텔레비젼 방송에 집중하고 있었다.

"패쇄디어 버린 다리의 교각에서부터 흘러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신을 감식해본 결과.살해된 이 남자는 이름 외에는 이작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까불이 형사가 들어오자. 동료들은 모두 그의 주위를 감쌌다.

"야! 너 어떻게 된거야?"

"뭐가 말입니까?"

"까불이 선배..[퍽!] 으갹...아니. 선배님"

"왜. 뺀질이.."

"선배가 죽었데요."

"뭐? 내가? 뭔소리야?"

 

텔레비전에서는 방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름은 최태석, 특별한 직장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던 부랑자로 밝혀졌습니다만, 정확한 전황은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텔리변의 방송이 끝나자, 퇴채석 형사의 후배, 최환 형사는 그를 놀려먹기에 바빴다.

"거봐요. 선배...선배가...죽었다네요...히히히"

"이게 매를 벌어요. 벌어"

말을 하며 가볍게 알밤을 먹이는 태석. 그리고 그의 장난스런 알밤을 애교있게 받아주는 환. 둘인 이 형사계에선 알아주는 콤비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참 수사하기가 어렵겠네"

"누가 아니랍니까? 피해자 신원도 불확실한데......어디부터 어떻게 수사를 하라는 건지..."

"신경쓰지 말고. 우린 우리 할일이나 하자고."

"네에~ 선배님"

 

==한강호텔 1107호-==

은수는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리는 비 떄문에 생긴 창분의 빗줄기를 보며 뭔그를 한참이나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국 그는.....방도를 냈다.

 

은수는 전화기를 들었다. 바로 안내로 이어졌다.

"1107호 입니다. 룸서비스 하나 부타하고 싶은데요"

"무엇입니까. 손님?"

"지금 토스트와 스크램블드 에그 세트를 하나 준비해주시고,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 진하게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뭐 따로 부탁하실일이라도?"

"없습니다."

"빠른 시간내로 준비하겠습니다."

 

잠시의 시간 동안 기다리자, 호첼방의 벨이 울렸다. 은수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문을 열었고, 귀여운 외모의 여직원이 그를 옹대했다.

"손님꼐서 부탁하신 커피와 토스트 세트 입니다."

"지금 밖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꽤 시끄럽던데...."

"아.....호텔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어요. 뭐 큰 사고는 아니지만....이렇게 큰 비는 처음이네요. 교통사고도 빗물 때문에 일어난건데..."

"그래요?

은수는 우연히 여직원의 발 뒤꿈치를 봤다.

"발 뒤꿈치가.....빨간데....."

"원래 힐 신으면 다 이렇죠. 식사는 어디다 둘까요?"

"아. 저쪽 노트북 옆에 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여직원이 종종걸음으로 세트를 노트북 옆에 두고 방을 떠나려 했다.

"다 드시고 난 다음에 다시 절 불러주십시오. 윤소정 입니다."

"아. 그전에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뭐지요?"

"하영수 영감......어떤가요?"

"하영수 영감이요? 은근슬쩍 여자들 엉덩이마 만지는 그 변태 영감 말인가요? 그건 왜요?"

"아. 자주 눈에 띄긴 하는데..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해서 말이죠. 소정씨라면 알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자 엉덩이 만질 생각 밖에 안하는 변태영감이에요. 뭐 화가라곤 하지만.....실력도 형편없고.....말이죠. 뭐 돈 잘버는 아들딸이 있겠지 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도 엉망이고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죠?"

"겉보기엔 꽤 교양있어 보여서 뭐하는 양반인가 알고 싶었는데....그런 일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손님. 또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전화 주십시오. 윤소정입니다"

"수고해요"

 

은수는 꽤 정중한 태도로 직원을 돌려보냈다.

소정이 책상위에 가져다 노은 식사를 집어삼키며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은수는 호텔 건너편 커피숍 테라스에서 호텔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혼자서 마지는 커피라 조금 안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나름 차려입은 덕에 그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와이셔츠 차림에 세미정장 스타일. 옷이 날개라른 말은 과연 효염이 있었다.

날카롭게 호텔 정문 쪽을 주시하던 은수는 하 영감을 발견했다.

근처를 지나던 직원을 불러세워 계산을 마친 은수는 조용히 하 영감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은수는 하 영감이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버스 번호를 주시한 그는 다시 호텔 자기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은수는 낡아빠진 안락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옆방 소리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앉아있었다.

귀를 기울이느라 눈을 감고 있던 은수는 옆방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시계를 봤다. 시례를 본 은수는 회심의 미소를 띈채, 다시 컴퓨터 앞으로 들어섰다.

한참동안 컴퓨터 앞에서 붙어있던 은수는 또 다시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서둘러 호텔 밖으로 나왔다.

일이다.

은수는 언제나처럼 정중한 태도로 일관하며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붙잡아타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다시 다음날 아침, 한강호텔 1108호=

 

하영수 영감은 또 다시 그 짓을 반복했다.

전화기를 들고 여직원을 부르는 것이었다.

"여기 1108호. 된장찌개 백반....."

격의없고 무례하게 구는 말투. 하지만 직원 입장에서 딱히 반박하기도 뭐했다.

하영수 영감의 주문대로 한 여직원이 하영수 영감의 방에 식사를 배달했다.

하영감은 특유의 가증스런 눈빛으로 여직원을 방으로 들였다. 식탁위에 얹는 그 틈을 타서 다시 여직원을 추행했다.

"꺄악......손님"

"아니...너무 이뻐서 그랬어. 수고했어. 그만 가봐....."

오늘도 어김없이 당하고 만 직원은 내심 분개해하며 토라진 얼굴로 직원실로 향했다.

 

==직원실==

직원들은 조금전 하영감에게 당하고 만 후배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영감이 엉덩이를 만졌다고??"

"갈때마가 매번...한 두번도 아니고..정말 못참겠어요. 선배"

"어쩔 수 없잖니. 그 영감이 워낙 많은 돈에 창기투숙 한 사람이라 지금 그 영감을 쫓아내기에는 우리 부담이 너무 크단다"

"대체........그 영감은......"

"미정아......조금만 참으렴.. 3개월만 참으면 그 영감이 나가게 되는 날이니까..."

"히잉~~~"

직원들끼리의 수다에 눈치는 못챘지만, 하 영감은 지금 호텔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행색이 남루한 꼴로 버스를 잡아타고 어디론가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 이곳에선 몇몇 노인들이 장기며 바둑, 게이트볼을 즐기는 실버타운 풍의 모습이 짙게 풍겨나왔다. 하영감은 이곳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봤다. 몇몇 영감들과 몇마디 주고 받은 하영감은 뒷골목에 자리잡은 다방으로 너풀너풀 걸어들어갔다.

 

은수는 그곳에 있었다. 값싼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묵묵히 하영감을 기다렸다. 이윽고 하영감이 들어오자 그의 눈이 돌연 빛나기 시작했따.

하영감은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창가의 양지바른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다른 할아버지들과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내기장기를 두기 시작면서 하영감은 좀처럼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은수는 하영감과 상대 할아버지들과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보게. 차영감. 이제 자네도 슬슬 들어오지 그래"

"허허허...난 관심 없다네. 뭐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허허. 자네도 참"

"하긴....그건 그래....껄껄껄..."

흔해터진 노인들의 대화였다. 하지만 은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영감 자넨 어때?"

"나도 마찬가지지 뭐.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안 그래?"

"두 사람다...관심이 없는 겐가?? 내가 사람은 제대로 봤군 그래..껄껄껄껄"

너털웃음일 짓는 하영수 영감. 하지만 상대인 차영감과 김영감은 내심 안타까운 눈치였다.

"알겠네...내 이제 그말 안꺼내지.....자네들 정말 관심 없는거지??"

하영감의 마지막 승부수.....김영감이 걸리고 말았다.

 

"자네...그거 정말 확실한건가?"

하영감의 눈빛이 순간 욕심과 허영으로 빝났다. 은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자네...정말 할껀가?"

"난 하영감 함 믿어보겠네...차영감 자넨 어때?"

"난 관심 없대두....어쨌거나 김영감...잘 되면 나중에 막걸리나 한턱 주게나"

"허허...이 친구...알았네. 내 함 사지. 하영감. 가세나"

 

내기 장기가 채 마무리 되지도 않았는데 차리를 떠난 김영감과 하영감. 차영감은 벗겨진 머리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은수는 그런 두 영감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테이블위에 커피값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은수를 그 누구도 의심스럽게 보지 않았다.

 

==버려진 대피소 입구. ==

 

하영감과 김영감이 이곳에 들어오고, 하영감이 금방이라도 삐걱거리며 넘어질 듯한 녹슨 철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는 역시 영감의 목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을 맞아들였다. 하영감과 김영감은 그 곳으로 조용히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양은수 였다.

 

떵거미가 져버린 시각. 하영감 혼자서 입구를 통해 나오는 것을 본 은수는 하영감이 입구에서 멀어져 다가오자. 별안간 하영감 앞에 들이닥쳤다.

"헙...누.....누구냐?"

은수의 눈초리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하영수 영감은 사시나무 떨듯 떨다가 이내 쳔안한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훗...때가 됐군......이곳에선 우리 둘 다 곤란하지 장소를 옮기지 그래?"

"......"

"허허...내가 아직도 목숨에 욕심이 있을거라 생각했나?"

하영감이 오히려 은수를 이끌고 너무도 조용한....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곳으로 그를 안내했다.

"이곳이 말이네.....내가 태어났던 집. 그 집이 있던 자리일세....내가 어쩌다 노름꾼이 되어서 집안 재산 다 말아먹고 이 지경이 되었지만, 다시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아 여기까지 다시 왔네. 여기라면 내 무덤으로 충분한 곳일세..."

"영감"

"자네도......밝은 곳에 있는 이는 아니구만...."

"......"

"자네같은이가 오기를 한참이나 기다렸네. 내 호텔 옆방에서 묵는 자네를 처음 봤을때 느꼈는데.....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그럼 영감은 제 일을 짐작하신 겁니까?"

"이 나이 먹도록 사람을 대하다 보면 눈빛만으로 많은 걸 알수 있네...자네는 청부업자라는걸 들키는 눈빛이네...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만 그 생활 오래 하려면 그 눈빛 부터 버리게......이건.....충고라고 할 수도 없겠군"

"대체..그 눈빛이라면..."

"권총인가? 권총이라면 내게 주게....내 스스로 자괴감에 못이겨 숨을 끊었다는 편이 내게도 이익이니...."

"영감님......"

"사실....나는......아직도 사기노름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하고 있네. 예전에는 타짜로서도 일했찌만 실력이 없어서 그저 설계나 하고 다니는 설셰사가 되었는데...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지. 하지만 이제 슬슬 노름판에서 빠지려고 하니...쩐주가 의뢰한 모양이군."

"......"

"젊은이..세상은 이렇다네.... 필요없어지면 가차없이 내쳐져버리는게 우리내 일생이지. 이번엔 자네가 사신이 되어 우리같은 사람을 잡으러 왔겠지만, 언젠간 자네에게도 사신이 닥칠 것이야. 명심하게"

"여....영감님..."

"훗....이봐.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아나?"

"......"

"내 생일일세....내 아내가 어서 오라는군.....내 앞에 나타나줘서 고맙네. 젊은이...."

 

공허한 달밤에 단발마의 나미작한 총소리가 울러쳐졌다. 소음기 때문에 크게 나지는 않았지만 한 생명을 끊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다.

 

==근처, 한 바==

은수는 오늘 만큼은 취해보고 싶었다. 하영감의 말. 죽기전에 해주려뎐 충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그게 뭘까??

"혹시 거울 있습니까?"

"거울이요? 여기 있어요."

바텐더가 내민 조그마한 손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던 은수는 도무지 하영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내 눈빛이 뭐가 어떻다는 거지?'

그렇게 은수는 계속해서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나 마셨을까.. 은수는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있었다.

바도 마침 영업마칠 시간이 되자, 몇몇의 남자 바텐더들이 그를 들쳐메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바텐더가 은수를 부축하며 걷기 시작했다.

"어이쿠. 손님  왜 이리 많이 드셨습니까? 걸어보십시오. 술 꺠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바텐더의 친절하고 정중한 말에 은수는 조금 걸어보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눈앞은 어지러웠다.

바텐더는 길가던 택시를 한대 세웠다. 택시가 눈 앞에서 서자, 그 바텐더는 택시 뒷문을 열고 은수를 밀어넣었다.

아직도 정신이 온전히 들지 않았는지, 은수는 뒷좌석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바텐더는 택시기사에게 돈을 지불하고 한강호텔로 가달라고 했다.

'내가 사는곳 주소까지 말했나?? 나도 참 무르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 바텐더가 갑자기 차창 안으로 몸을 기울여 나지막히 속삭였다.

 

"기사 아저씨. 이 아저씨 잘 좀 보살펴 주세요. 아. 긜고 은수씨....잘 가세요."

"고...고맙습니다."

"고마워 할 피료 없어요. 저는.......사산이니까"

 

바텐더의 마지막 비릿한 웃음을 본 은수는 서둘러 그를 주시했다. 하지만 이미 차창 밖으로 몸을 뺸 바텐더였고, 택시는 이미 출발한 뒤였다.

택시 안에서 멀어져 가는 바텐더를 보며 은수는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