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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향

2010.06.14 11:45

Lain 조회 수:27478

허 to the 새 ㅋ

소설 창작과 감상이란 수업에서 썼던 소설인데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악평도 좋아요 리플이나 달아줘요 앜ㅋㅋㅋㅋㅋㅋㅋㅋ

 

 

 

 

잔향

 며칠째 계속된 철야 탓에 모든 게 다 엉망이다. 이젠 글로 쓸 소재도 남지 않았다. 며칠 전에 다녀온 취재 여행에서도 쓸거리는 건지지 못했었다. 억지로 글을 쓰려니 고욕이었다. 더 이상 짜낼 것도 없는 양 젖을 주무르듯 머리를 쥐어 짜 봐도 나오는 건 신음뿐이었다. 이럴 때면 짜증보다도 절망감이 엄습해온다.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고 떼쓰듯 시작한 일이었다. 난 누구보다 재능이 있다고 믿었었는데 이정도로 글이 안 써질 때면 참 답이 없다.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는다. 차라리 어머니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들다가도 오기가 생겨 며칠째 컴퓨터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방안의 공기가 탁하다는 것이 이제야 느껴져 베란다 창을 열었다. 거기에는 큼지막한 꽃나무가 있다. 때문에 늘 어두컴컴하다. 가지를 손으로 들어내며 작은 햇살을 찾아 몸을 쭉 빼어내니, 슥 하고 바람이 스쳐간다. 아련하게 남은 꽃의 잔향이 흘러간다. 그렇게 또 여름이 다가왔다. 살아도 죽은 것 같은 삶인데, 어찌어찌 꾸역꾸역 살아왔다. 어데서 날아왔는지 꽃잎이 날 지나쳐 방안으로 흘러가다 벽에 막힌 듯 하늘하늘 떨어졌다. 푹 하고 떨어지는 꽃잎이 마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진다. 몹시 씁쓸하다. 갑자기 외로움이 엄습해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 작은 방안이 내게 준비된 관처럼 느껴진다. 바람조차 멎은 방 안에서 나가고 싶어졌다. 희뿌연 담배 연기를 헤치고 방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더운 날이다. 내리쬐는 햇살 탓에 바닥이 메말랐다. 며칠 전에 내린 비의 흔적 따위는 뵈지도 않았다. 비가 왔다는 사실도 이젠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비가 왔다는 사실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계절이 흐르면서 말이다. 슬슬 주위를 둘러보며 버스 정거장까지 걸었다.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아마 곧 여름 방학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자 부러움이 가득하다. 반팔 티셔츠를 흩날리며 저 멀리로 사라져갔다. 나에게는 소란만을 남기고서.

정거장에는 피고 진 꽃잎들이 바닥을 가득하게 메우고 있었다. 꽃잎들은 사람들의 발에 채여 떠올랐다가 이내 흐르는 강물에 가라앉듯 서서히 가라앉았다. 하릴없이 버스를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으니 자꾸 꽃잎들이 눈에 스친다. 눈이 맵다. 다 지난 봄날에 알레르기라도 도진 겐가 싶게 눈가에 자꾸 눈물이 맺힌다. 꽃잎이 뜨다 가라앉는다. 또 뜨다가 가라앉는다. 버스는 올 생각을 않는다. 아마 오다가 꽃잎에 발이 걸렸나 보다. 아니면 예쁜 꽃을 지나치지 못해 꺾으려 키 돋움이라도 하는 겐가? 초록색 버스가 분홍 꽃잎을 따려 발돋움을 하는 걸 상상하니 자꾸 코웃음이 나온다. 마치 잎사귀인 것처럼 분홍 꽃잎에 살살 다가가도 꽃은 도망칠 텐데. 잘 해봐야 꽃은 곧 시들어 버릴 텐데. 하기사, 가만 놔둬도 시들 꽃잎이었다.

 

 아무 버스에나 올라타 창밖을 바라보니 내가 좀 모자란 사람 같이 느껴졌다. 모두가 반팔을 입고 다니는 데 나 혼자만 봄을 누리고 있다. 덕분에 등이 흠뻑 젖어오는 게 느껴진다. 해서 등을 떼고 구부정하게 있었다. 창밖으로는 바람이 일어, 정신없이 흩날리는 꽃잎들 뿐에 보이질 않는다. 비가 오듯 꽃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것이 장관이다.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보내는 그들이 문득 부럽지만, 초록색 잎사귀가 지는 것은 가을이다. 아직 잎들은 때가 아니다. 그게 슬플 뿐이다. 창을 여니 마지막 잔향들이 아련히 내 코를 스쳐갔다. 사라져가는 꽃잎이 마지막 향을 돋아내려 자꾸만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버스는 정신없이 도로를 달린다. 수많은 정거장을 거치지만, 내가 내릴 곳은 다가올 생각을 안 한다. 버스 안을 둘러봐도 별 다른 것이 없다. 버스는 시작에서 끝을 향해 달리지만, 글쎄. 문득 버스의 끝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 먼 길의 끝에서 버스는 무얼 할까? 달리지 않는 버스라는 게 무척이나 생소하다. 창밖의 나무들에선 분홍 꽃잎들이 자꾸만 떨어져 바닥에 쌓여간다. 어느새 바닥은 아스팔트의 진푸른 색이 아니라 분홍색으로 가득해졌다. 천천히 그 위로 꽃잎들이 더 쌓여가는 게 보인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꽃잎이 지는 걸까 싶어 나무들을 바라보니 나무들은 그보다 더 진한 분홍색으로 가득했다. 바라만 봐도 코가 시리고 눈이 매큼하다. 진한 분홍색만큼이나 진한 향이 느껴지는 듯 해 눈에 눈물이 또 고였다. 하지만 흐르지는 않았다. 마치 하품처럼. 졸리진 않지만 옆 사람에게 옮아 나도 하고야 마는 하품처럼, 슬프진 않았지만 꽃들의 잔향에 옮아 눈이 발갛게 물들어갔다. 매해 봄마다 되풀이 되는 이런 과정이 이젠 무감각해질 때도 되었건만 매번 꽃잎들이 떠오를 때면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만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며 쓸데없이 눈물이 많다 했지만, 잔향이 애처로운 것은 어찌할 바가 없고 이지러지는 꽃잎이 아련한 바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방금 꽃이 하나 더 졌다. 잎사귀들은 저 꽃잎을 벌써부터 추억하듯 부는 바람에 울다가 바람이 멎자 입을 뚝 그치고 만다. 그렇게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은 떠오르고 잎사귀는 운다. 잔향이 자꾸만 날 울게 한다.

 어느새 버스는 멈춰 있었다. 문득 버스 안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다. 심지어 운전기사조차도 없다. 저 멀리로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나만 있었다. 반대편 창을 바라보니 어느새 한강이었다. 저 멀리로 여의나루역이 보였다. 버스는 어느새 날 추억 속으로 귀향 보내고는 내빼버렸다. 하지만 버스에 탄 것도 나였고, 하필이면 여의나루행 버스를 탄 것도 나였다. 어차피 산책이나 오려던 것이었으니, 하고 버스에서 내리니 발목까지 꽃잎이 가득하다. 이러다 묻혀 버리고 말겠다, 싶어 하늘을 바라보니 온통 분홍색이다. 노을인가 싶지만 해는 아직 중천에 있었다. 세상이 온통 연분홍빛으로 가득해 숨이 막혀왔다. 숨이 막히고, 온 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흘렀다. 온 세상에 꽃잎만이 가득했다. 아름답지만, 슬프고 무서웠다. 아직 꽃잎들은 분홍색을 간직 한 채였다만, 곧 그 색을 잃고는 불꽃이 사그라들듯 이 도시를 떠나겠지. 떠나야 할 것들로 가득 차버린 도시는 연분홍빛에 향마저 아름답지만, 나는 알레르기 탓에 눈물이 자꾸 났다. 헌데도 흐르지 못한 채 그저 세상이 조금씩 뿌옇게 흐려질 뿐이었다. 의사는 나에게 잔향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천천히 숨도 못 쉬게 한 채 정신없이 날 후드려치고, 눈물이 샘솟고, 결국에는 죽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꽃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꽃이 진 후에도 그 잔향은 깊게 남았다. 기억 속에 남은 향들이 나를 불러내는 것인지, 아니면 향기들이 떠나지 못한 채 잔향이 되어 내 주변을 떠도는 것인지. 강을 바라보니, 그렇게도 익숙하던 이곳이 색들 탓인지 작아져 보인다. 너무나 낯설었다. 강에 내려가려 계단을 찾았지만, 꽃잎에 묻혀 어디가 어디인 지 알 수 없었다. 알레르기 탓인지 온갖 생각이 내 머릴 파고들어 날 정신없게 한다. 바닥을 내려가다 꽃잎에 휘청여 나도 모르게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은은하지만 진한 향기가 날 어지럽게 해, 바닥을 다 구르고도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기침만 했다. 자꾸만 기침이 나왔다. 콜록이는 바람에 꽃잎들이 또 춤을 췄다. 눈을 살짝 뜨니 꽃잎들이 일어나고 지는 게 눈에 확연히 보였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얼굴에 묻은 꽃잎들을 털어냈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눈앞이 점점 희뿌옇게 변해갔다.

 

 

 

 

 어느새 꽃잎들은 발목을 넘어 정강이 근처까지 차올랐다. 구른 탓에 온 몸이 욱씬거렸다. 꽃잎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았다. 아플 곳은 아팠고, 잔향이 남을 곳은 남았다. 그저 씁쓸함이 아련하게 남은 몸을 이끌고 천천히 강가로 걸었다. 강가에는 나무가 없었지만, 꽃잎들은 어디선가 날아왔다. 세상은 아까보다 더 연분홍빛으로 가득해졌다.

 

 쉼 없이 걷는 데도, 한강은 가까워질 생각을 안 했다. 쉬고 싶다. 하지만, 쉴 수가 없다. 어느새 내 주위를 가득 매운 흩날리는 꽃잎들 탓에 어지러워져 이대로 서 있다간 죽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숨쉬기가 힘들다. 어느새 나는 필사적으로 걷고 있었다. 주저앉았다가는 그대로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건 저주나 다름없다. 가슴이 멎을 만큼 아련한 향기에 질식사한다면, 행복할까. 결국엔 죽는 건데 말이다. 게다가 이런 곳에서 나 홀로 쓸쓸이 꽃잎에 묻히다니.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천천히 숨이 멎어 꽃잎에 가려지는 내 육신을 떠올리니 아찔한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이 꽃잎과 잔향의 바다에 눕는다면, 내 몸은 천천히 꽃잎과 함께 사라지겠다. 죽는 순간까지도, 죽어서도 꽃잎과 함께 사그라든다면 그건 무척이나 아름다울 텐데. 이건, 내가 꿈꾸던 죽음이 아닐까? 중2병이 있던 나는 나이를 먹어도 그걸 극복하지 못했다. 그것은 점점 심해져 이윽고 ‘사회적 병명’으로 컸다. 그것이 자라고 자라 ‘우울증’이 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 주었다. 나의 아픔을 말이다. 하지만 얼마만큼 아픈지는 모른 체 ‘왜’ 아플까에만 집착했다. 그래서 난 결국 외로워졌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원인 모를 불치병에 하나 둘 날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첫 사랑에 빠진 뒤부터, 난 늘 생각했다. 행복할 때 죽는 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더 이상 아프지 못한 채 행복에 잠겨 죽는 다면, 죽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생에 미련이 없었던 열일곱 시절. 자란 건 키뿐이고, 그 뒤로 난 변한 게 없다. 여전히 행복할 때에 죽고 싶었다. 사랑하는 분홍빛 꽃잎들과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의 잔향들에 휩싸여 죽는다면, 그건 행복할거다. 문득 내가 왜 죽지 않으려 드는가가 궁금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일부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콘크리트와 철근을 붙잡는 내 모습이 보이는 듯 해 도리질을 치고야 말았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사회의 한 부분이 되어간다. 나도 피해 갈 순 없다. 나도 그렇게 어른이 되가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난 끝을 향해 걷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선 안됐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난 또다시 우울증으로 회귀 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저 멀리 오두막이 보였다. 2층으로 된 오두막은 예전과 같이 무척이나 튼튼해 보였다. 지붕에 가득히 쌓인 꽃잎들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두막은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에 여전히 서 있었다. 언제인고 그녀와 함께 저 오두막에 오르려던 때가 있었다. 그날도 꽃이 지던 봄이었다. 늦은 봄에 꽃놀이를 나온 우리는 나무가 아닌 바닥에서 져가는 꽃들밖에는 볼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에게 잔향 알레르기가 생긴 것은. 천천히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그녀가 울고 있었다. 나에게 무언가 말했지만, 들리진 않았다. 그녀는 달려갔다. 강가를 향해. 꽃잎들에 가려 점차 보이지 않았다. 아니, 눈물이 고여 보이지 않게 된 걸지도 모른다. 강한 바람이 불어 꽃잎들을 모두 앗아가자 그때서야 그녀가 보였다. 눈물을 닦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바닥에 남은 자국들만이 그녀가 울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줄 뿐이었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는 것을. 그녀와 나는 다시 손을 맞잡고 걸었고, 오두막 앞에 섰다. 나는 오두막에 말없이 올랐다. 오두막에 오르자 저 멀리까지도 보이는 듯 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그저 고개만 흔들었다. 올라갈 수 없어, 라는 듯이. 혹은 저 멀리를 바라 볼 수 없다는 듯 그녀는 애처롭게 강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다시 눈물을 흘릴까 두려웠다. 그때에도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고, 내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지만 난 울지 않았다. 울지도 못했다. 오두막 앞에 서서 그녀가 바라본 강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강가는 내게 멀게만 보였다. 그녀는 무얼 보았나 싶었다. 그녀가 선 그곳에 서서 강가를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서서히 검어졌다. 그녀가 본 것은 이것이었나? 이런 검고도 어두운,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이었나? 마치, 세상이 멸망한다면 이런 것일까? 나를 둘러싼 세계가 천천히 무너져가는 기분이다. 저 외곽부터 천천히 어둠으로 물들어 이윽고 눈에 초점이 풀린다. 세계는 점점 검어져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거친 숨만이 느껴졌다. 점점 짧아지는 호흡 탓에 숨을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목숨을 빼앗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죽음은 편안한 것이라 했지만, 그 말을 했던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전에 한 말 일테지. 웃기지 마시라. 죽음이 있다면, 이런 것이지 그런 아름다운 것이 아니야. 억울하고도 분한 기분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소리를 지를 만한 힘이 없다. 내게는 그저 숨 쉬는 것에 집중할 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스르륵 무너져버렸다. 세상이 온통 까만 채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쓰러져 오두막 기둥에 몸을 기댄 채였다. 숨이 가파르다. 어느새 무릎까지 차오른 꽃잎들 탓인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기절하느라 눈 앞이 검어진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보았던 그것을 나도 본 것인지. 아까의 그것은 아직도 내 눈에 남아있었다. 눈가를 슥 훔쳤다. 검었던 세상이 점차 분홍빛으로 밝아져갔다. 아아 다행이다. 세상은 아직 남아있었고 난 숨을 쉬고 있었다. 여전히 괴롭고 거칠었지만 내 숨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내 숨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소름이 돋아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는 그녀가 있었다. 어느새 차오른 꽃잎들 탓에 무릎까지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였다. 눈물 탓인지 희뿌옇게 보였지만, 그 선한 눈매마저 제대로 보지 못했건만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아아 하고 손을 내 뻗었다. 꿈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눈을 꿈뻑 감았다 뜨니 그녀는 없었다. 빈손만이 보였다. 꽃잎이 만들어낸 분홍빛 환영이었나 싶고, 내가 죽을 만큼 괴로워 헛것을 보는 걸 테지 싶으면서도, 억울함이 그윽하게 차오른다. 차라리 눈을 감지 말 것을. 아니면 눈을 뜨지 말 것을. 그 순간에 손등 위로 꽃잎이 이끌려왔다. 마치, 손을 잡아 주듯이. 꽃잎은 눈처럼 녹아 손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녀를 본 탓에 입이 자꾸만 벌어졌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입을 굳게 물으니, 아래턱이 발작을 하듯 떨렸다. 차라리 울어버리란 듯이 눈 꼬리가 흔들렸지만, 웃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내 배를 잡고는 웃어버렸다. 숨이 더 차올랐지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멈춰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환각에서조차 그녀의 얼굴이 보일 리 없다는 걸 깨달아서다. 난 이제 그녀를 볼 수 없다. 그녀를 볼 수 없다면, 그녀가 본 것을 바라보고 싶었다. 웃음이 멎자마자 눈가를 훔치며 다시 강을 향해 걸었다.

 

 강으로 걷는 길에 옆을 보니 덩굴이 자란 아치형 통로가 보였다. 커플들이 손을 맞잡고 걷는 그런 곳. 언제부턴가 저런 게 보일 때면 무의식적으로 피하곤 했다. 추억이 되살아나는 게 싫었다. 하지만 가빠진 숨 탓에 쉴 곳이 필요했다. 작은 지붕이면 족했다. 오두막에는, 왠지 오르기 싫었다. 오두막에 다시 오르는 그 순간 난 그녀와는 영영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릴 것 같아 오를 수 없었다. 이미 늦어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아치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숨 쉬기가 힘이 들었다. 걷는 것마저도 힘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느새 꽃잎들은 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아니, 내 키가 작아진 건가? 키가 작아질 수도 있을까? 내가 몸을 굽혀서일까?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에 뱉어진 한숨에 꽃잎이 차올라 코를 스쳤다. 잔향에 나도 웃고 말았다. 향기에 매료되어버렸다. 더 아련한 잔향을 쫓아 고개를 들려는 데, 누군가의 허리께가 보였다. 또 눈물이 차올라 눈앞이 희뿌옇게 물들었다.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눈가를 재빨리 닦았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볼 수만 있다면 그녀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들려는 데, 그녀의 손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는 데, 아스라이 느껴지는 찬기에 나도 모르게 멈칫 했다. 얼음장처럼 차게 식어버린 그녀의 손. 그녀의 손이 그렇게 차가웠었나 싶어 고개를 들었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치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골랐다. 아아. 맞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그녀는 자신의 차가운 손이 싫다고 말했었다. 난 그때마다 마음이 따스한 사람일수록 손이 차다며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녀는 그때마다 어슴프레 웃었다. 당신은, 손이 따듯해서 좋아. 늘 나의 말에 웃기만 하던 그녀가 그 말을 했던 건 마지막 날이었다. 울 눈물조차 남지 않아 말라버린 눈으로 날 또렷하게 바라보며, 고통에 신음하며 서서히 갈라지고 메마른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생각보단 따스했어. 바쁘다며 그녀를 잘 찾아보지 못했던 나에게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하얀 꽃으로 화해 한강에 흩날렸다. 나는 그걸 볼 자신이 없어 도망쳤다.

 

  어느새 세상은 꽃잎으로 가득했다. 아까보다 더 가득했다. 차오른 꽃잎들은 어느새 내 가슴께를 지나고 있었다. 꽃들이 차오르는 속도가 아까보다 더 빨라진 듯 했다. 건물들도 더 커져있었다. 모든 것들이 아까보다 더 커져있었다. 낯설었던 세계가 어느새 낯익은 세계로 돌아와 나를 맞았다. 점점 꽃잎들이 더 빠르게 차오르는 것 같다. 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날아간 그 강에 날려진 꽃잎들은 강물 위를 덮었을까, 아니면 가라앉았을까. 그녀는 그때 무얼 본 걸까. 자신이 날아가 누울, 이윽고 천천히 가라앉을 그곳을 본 걸까? 아니면, 내가 본 그것을 본 걸까. 궁금함이 차올라 숨이 가쁜지도 모른 채 몸을 끌어보지만 차오른 꽃잎 탓에 걷기도 힘들었다. 어느새 잔향은 내 가슴께서 피어나 천천히 날 물들이고 있었다. 헐떡이는 숨으로 강을 향해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세상은 점점 커지고, 꽃잎은 점점 차올랐다. 점점 많아진 이 흩날리는 꽃잎들은 모두 어디서 왔을까. 아마도 꽃나무에서 흩날려온 것일 테지만, 대체 어째서 여기까지 날아와 나의 숨을 차오르게 한 것일까. 흔들리는 사고 속에서 잔향만이 남아 가슴 한켠에 아련하게 보이는 꽃을 피웠다. 손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한 분홍빛은 어느새 내 온 몸을 물들여 턱밑까지 차올랐다. 피어난 꽃은 조용히 호흡하듯 꽃잎 새에서 흐드러지고 있었다. 같은 꽃이다. 내 가슴에, 분홍빛 세상이 피어났다. 그녀를 본 탓인가? 언제고 내 가슴에 핀 꽃이 질 때면, 내 꽃잎도 조용히 흩날려 이 세상을 물들이려나. 그렇다면, 이 꽃잎 새에 그녀의 꽃도 있을까? 그녀의 꽃잎들의 향기가 있다는 믿음이 날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녀의 꽃잎들의 향기가 있다면, 난 그것을 필시 맡을 수 있으리라 하는 믿음도 함께 피어났다. 그러자 저 멀리서 그녀의 잔향이 날아오는 듯 했다. 아니, 그것은 잔향이 아니었다. 피어나 이윽고 져갈 때, 꽃잎이 지기 전 마지막으로 피워내는 향기. 그녀가 저 멀리 있다.

 

 

 

 

 강가에 오고 보니 어디부터가 강이고 어디까지가 땅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경사만이 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온통 가득 찬 분홍빛이 서서히 빛이 바래져 가고 있었다. 잔향도 점차 얕아져 가고 있었다. 점점 그녀의 향기도 엷어져 가고 있었다. 그녀도 잔향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그녀를 찾았다. 코에, 살갗에 와 닿는 향기와 찬기를 쫓아 나도 모르게 강으로 들어갔다. 강에 들어오자, 저 강 너머에서 그녀의 잔향이 날려 온다는 걸 알게 됐지만, 강물은 천천히 흘러 나를 흐르게 했다. 움직일 때마다 꽃잎들이 엉키고 뒤섞여 날 옭아매었다. 아니, 이건 정말 강물일까? 꽃잎들이 어느새 물들을 다 빨아들여버린 건 아닐까? 흐르는 꽃잎에 나도 흘러갔다. 그녀의 잔향이 점차 사그러들자, 또다시 그녀를 놓칠까 두려워 주변을 마구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로 선 건물들이 분홍빛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는 게 보였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붙잡으려 해봐도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해 건물들은 점차 허물어졌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고개를 뒤로 돌리니, 오두막이 무너지는 게 보였다. 허물어지는 오두막께에 점차 허물어지는 남자가 보인다. 이윽고 다시 일어나는 그는 어느새 온 몸이 분홍색으로 변해 꽃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바람에 흩날려갔다. 저 멀리 무너지는 건물들 사이로 내가 보였다. 건물들이 무너지는 새로 도도히 서 있었지만, 그도 곧 꽃잎에 눌려 눕혀지고 사라졌다. 아아, 내가 사라졌다. 저 멀리 잔향을 좆아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보지만, 어느새 사라져가는 잔향 탓에 어디로 좇을지도 모르겠다.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세상을 온통 가득 매운 그녀의 잔향 속에서, 그녀의 꽃잎 사이에서 잔향이 아닌 그녀의 살아있는 호흡이 들렸다. 고개마저 파뭍고 숨조차 쉬지 못하면서 나를 저 밑으로 날렸다. 꽃잎들이 날 어지럽게 하고 숨마저 쉴 수 없게 한다. 향기로운 그녀의 내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 미쳐버릴 것만 같다. 내 주변을 가득 채운 그녀의 잔향 새로 그녀의 향기가 보인다. 손에 잡힐듯 한 그 향기를 좇아 천천히, 천천히, 팔을 내저었다. 그럴 때마다 꽃잎들이 입으로 들어와 숨이 막히게 했다. 점점 내 안으로 꽃잎들이 차올랐다. 어느새 나의 꽃은 꽃잎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미 난 져버린 꽃잎으로 가득해서 그랬는 걸지도 모른다. 꽃잎에 가득해져버린 지금에서야 나는 꽃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저 멀리로 그녀의 향기가 났다. 찬기가 점점 강해진다. 몸속을 가득 채운 꽃잎을 머금은 채로, 나는 숨을 멎었다.

 

 

 

 

 배가 고파 잠에서 깨어났다. 책상 위는 온통 내 침으로 가득했다. 며칠간의 철야가 날 잠에 빠뜨렸나 보다. 모니터 속 시계를 바라보니 마감까지는 30시간 남짓이 남아있었다. 대체 몇 시간을 잔건가 싶다. 배가 고파 부엌에서 찬거리를 찾지만 아무것도 없다. 결국 라면을 꺼내었다. 몸이 안 좋아진 탓에 갈수록 위장도 오그라들고 있었다. 해서 라면을 반개만 삶아 계란도 넣지 않은 채 먹었다. 라면을 먹는 데 내 머리 냄새가 슬그머니 내 코를 괴롭힌다. 지독하게 찌든 냄새에 나도 모르게 토악질을 해버리고 말았다. 입가를 훔치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질을 했다. 잇몸 새로 새어나온 피고름에 썩은 내가 가득했다. 배는 여전히 고팠다. 물을 마시고 남은 라면 반개를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었다. 아무런 맛도 없는 데 위장이 점점 찼다. 욱욱하고 올라오는 신 기운을 꾹 참았다. 입가로 몇 번쯤 차올랐지만 다시 삼키며 끝끝내 남은 사리를 다 씹어 먹었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 짓이 힘이 든다. 갈수록 티비 속 자살 기사에 눈길이 가면서도 이내 도리질 치는 나다. 죽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내 주변에 남게 될 사람들이 눈에 선해 죽지도 못해 도리질 치는 나다. 그럼에도 저 깊은 곳에서 날 끌어당기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어찌 보면 본능에 가까운 이 욕망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럴 때에는 그저 다른 일을 하는 수밖에.

 

 설거지마저 끝내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며칠째 나가지 않는 진도를 바라보니 앞이 막막하다. 고작 몇 만원에 며칠째 씨름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결국 원치도 않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흔하디 짝이 없는 애정물. 이런 걸 쓸 때면 토악질이 나온다. 키보드가 고장 날까 두려워 필사적으로 토악질을 참으며 글을 썼다. 편집장이 원하던 바 대로 독자들을 상정하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썼다. 등장하는 여자는 사랑을 모르던 사람. 남자는 따스한 마음으로 항상 주위를 돕고 사는 사람. 남자는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중. 남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아름답고, 따스한 마음을 놓지 않는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의 죽음의 순간에야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모두다 개소리다. 죽음은, 그저 아프다. 남은 이에게 아련함만을 전한다. 적어도 난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살기 위해 이 모든 걸 부정한다. 모든 걸 부정함으로써 살아남았다. 현실은 만만하지 않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를 해야 한다.

 

 쓰다쓰다 지쳐서 결국 홧김에 코드를 죄다 뽑아버렸다. 신물 나는 세상. 담배를 찾아 수북하게 쌓인 담배 곽들을 뒤져보지만,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짜증이 났다. 책상위를 팔로 모조리 쓸어버리자 소리가 요란하다. 재떨이에서 떨어진 꽁초들 탓에 썩은 내가 방안을 진동했다. 마치, 나 자신처럼 방안이 점점 변해가는 게 이젠 느껴진다. 좁아져가는 벽과 좁아져가는 천장, 점점 썩어가는 공기들과 누렇게 변색되어가는 벽지들. 색이 바래고 알 수 없는 냄새가 가득 밴 이부자리. 햇빛도 제대로 비치지 않아 이제는 누렇게 썩어버린 화분. 상쾌한 공기가 몹시 느끼고파, 베란다 창을 열었다. 몹시도 아련한 꽃 내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창밖으로 빼었다. 저 멀리서 날아오는 꽃의 향기. 이미 꽃이 죄다 져버린 꽃나무에는 져버린 꽃의 잔향만이 가득했다. 마음이, 아려온다. 나무 저 편에서 나는 알 수 없는 향기가 내 눈에 눈물을 자아낸다. 의사는 나에게 잔향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천천히 숨도 못 쉬게 한 채 정신없이 날 후드려치고, 눈물이 샘솟고, 결국에는 죽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는, 나도 모르게 저 멀리 향기를 좇아 손을 내밀었다. 잡히지 않는 향기에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손을 내밀었다. 창틀 너머에 걸치듯 서서 손을 내밀다가,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한 베란다 창이 무너지고 말았다. 벽돌과 함께 무너져 떨어지는 새로 꽃의 향기가 더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픔도 없었다.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꽃잎들의 잔향 탓에 온 몸이 마비가 된 듯 했다. 미적지근한 뭔가가 머리에서 흘렀다. 무언가 싶어 보니, 분홍빛 물이다. 수많은 분홍빛 꽃잎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온 몸에 감각이 없다. 잔향 탓인가, 하여도 내 방은 4층이었으니 떨어진 탓이겠거니 싶다. 부러진 겐지 팔 다리가 움직이질 못한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쳐박았다. 저 멀리서 알 수 없는, 잔향이 아닌 꽃향기가 나, 흡하고 고개를 쳐드니, 저 멀리로 분홍빛이 아닌 좀 더 선명하지만 희뿌연, 알 수 없는 빛깔의 꽃잎이 보였다. 이미 다 사그라졌는지, 마지막으로 남은 꽃잎 한 점. 분홍 꽃잎들 새로 홀로이 남은 꽃잎 한점까지 내 몸을 턱으로 끌어갔다. 헐떡이며 바라보니, 보기에도 아련하고 향기도 아련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꽃잎에 대었다. 찬기에 놀랐지만, 입술을 떼지 못했다. 찬기 사이로 아련한 온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향이었을까. 나를 웃게 만든 그것은. 향기만이 나를 울리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꽃잎을 베어 물었다. 꽃잎이 기도를 타고 흘렀다. 흐르는 곳마다 아련한 잔향을 남겼다. 숨이 가빠져왔다. 의사는 말했었다. 그랬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은 꽃잎이 입가에 묻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무언가 보였다. 저게 뭐였지, 싶다가도 왠지 모르게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가의 꽃잎을 닦을 생각조차 못한 채 또다시 턱으로 땅을 괴며 기었다. 점점 희미했던 모습이 선명해져 갔다. 세상이 온통 검게 물들어가는 데, 그녀에게서만이 향기가 났다. 누군가 말했었다. 사람이 최후에 최후까지 기억하는 것은 얼굴도, 행동도 아니야. 그 사람의 향기와 체온뿐이야. 기도를 타고 넘어간 꽃잎이 폐에 뿌리를 내렸는지 몹시도 가슴 왼쪽께가 아리다. 이젠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아아, 죽는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거였구나. 그런데 난 이런 걸 버텨낼 자신이 없어서 이태까지 이렇게 살았었나보다. 어둠속에 꽃잎만이 환하게 향기로운데, 어째서 난 그랬을까. 어째서 난 도망쳤던 걸까. 내 호흡소리마저 점차 희미해져 간다. 가슴 왼편이 몹시 아려 눈물이 터져 나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은 꽃잎을 마저 먹었다. 씹지도 못한 채, 기도를 타고 흘렀다. 바싹 마른 탓에 자꾸만 목에 걸린다. 입가로 무언가가 흘러들어온다. 약간은 짠 물에 꽃잎이 무럭무럭 자라는 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편의 무엇에 가까워져 갈수록 가슴이 더욱 더 터질 것만 같았다. 숨이 점차 흐려져 갔다. 저것은 점점 선명해져 갔다. 이윽고 그것의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어 보았고, 흐르는 눈물사이로 나도 모르게 어슴프레 웃고 말았다.

 

 

 

잔향이 흐드러진다. 봄은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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