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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Balhae

흔히 인생을 질긴 실타래로 표현하기도 한다.

얽히고 섥힌 많은 만남 들,

무수한 인연의 파편들이 자석처럼 엉겨붙어 한 덩어리의 또는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지도 ....

Ching 과 Maddog 의 만남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브리타니아의 여러 갈래의 별들 중에서

Balhae라는 특별한 혹성(?)에서 서로를 보게된 그들은 아주 한참동안이나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읽어 갈 수 있었던 것일까?

- 하지만 서로에게 비어있었던 시간만큼이나 새로운 공간에서 본 Ching의 모습은 낯설었습니다.


약간은 쉰 목소리로 Maddog 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필자도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필자 경험으로도 H.K 라는 토글(길드명)을 달은 친구와 한국인이 같이 다닌다는 것은

Balhae 의 상황으로서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H.K : 홍콩의 약어)

Balhae 초기 때의 일이다.

필자는 베스퍼의 은행 앞에서 오래된 친구인 H.K 출신의 L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서로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L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고 가벼운 수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L 은 필자의 나파 시절 테라산에서 이른바 Newbie 들에겐 죽음의 화신으로 불릴만큼

하이딩과 인비저블을 사용한 몹블럭의 달인이었던 인물이었다.

특히나 늘어가는 한국인 유저들에겐 그야말로 증오의 대명사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필자는 그 당시 소수민족이 지배권력층에 항거 하듯

그들을 척살하기 위하여 며칠을 그와 전쟁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결국은 다 대 다와 일대일 전투까지를 마치고서야 그와 친구가 되었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면 강력한 적은 또 하나의 친구일 뿐인 것을...

그런데 왠일인지 L은 자신의 길드원의 눈치를 보며 근처의 시약상으로 가 버리는것이었다.

서운한 마음도 잠시 이상한 생각 때문에 그를 기어이 쫓아가서 사연을 들어보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한국인이란 것 때문이었다.

그는 내게 단 한마디를 했다.

- Look at this!

그때 L은 테이머였는데 지금은 흔하게 되었지만

그당시 100만지피를 호가하던 Real Black 이라고 불리는 나이트메어를 10 마리 이상 소유하고 있었고

그의 길드원들은 모두 나이트메어를 타고 베스퍼의 시약상 옥상에서 사진을 찍으려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주위의 한국인들은 그들을 방해하기 위해 옥상을 올라가지 못하게 계단을 블록하고 있었고,

몇몇은 한국어로 욕설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어떠한 잡질을 당하였고, 어떠한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최소한 그 상황만으로는 이유 없는 또 하나의 잡질이었던 것이다.

결국은 씁쓸한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고 돌아 왔다.

내가 그였더라도 혹은 그가 나였더라도 같은 모습이 연출되었으리라는 결론을 내리고서 말이다.

- 그날부터 저는 Ching 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칼을 잡게 되었죠.

Ching과 함께라면 가슴 시리게 떨린 전우애를 느끼리라는 흥분으로 잠을 못 이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알게 되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14. 아바타는 어디에?

한동안 Maddog은 Ching의 권유에 따라 그들의 길드에 들어 범죄자 사냥을 했다.

물론 많은 시간을 같이 다닌 것은 아니었다.

로드브리티쉬의 잦은 제도변경에 따라 전투의 양상은

그가 극도의 실망감을 맛보며 은둔했던 시절보다 더 악조건을 제공했다.

게다가 더 나빴던 것은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었다.

그는 졸지에 H.K 출신이 되기도 했고, 매국노(?)가 되기도 했다.

단지 그들과 같이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갈등의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H.K 길드원의 벤더상을 방문 했을 때였다.

전투가 벌어지나? 벤더상에서는 낯선 방문객 둘과 H.K길드원 셋의 전투가 한참이었다.

아니 전투라고 불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거의 전투의 기초를 모르는 방문객 둘은 자신의 동료에게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무참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범죄자로 보이는 점을 악용한 잡질의 한 방법이었다.

Maddog 은 분노를 삼키며 질문 했다.

- 지금 뭐하는 거지?

길드원중의 한명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 별거 아냐. 재미일뿐이야.. 여우사냥...

Maddog 은 그날 결국 H.K 둘을 죽이고 길드를 나왔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럴 때 Guns 라면 어떻게 했을까?

간단하고 명쾌한 답을 늘 가지고 있는 Ching 은 이런 그를 어떻게 표현할까...

답답했다. 며칠을 기다렸지만 Ching은 나타나지 않았다.

- 어찌됐던 같은 소속의 길드원을 죽이고 탈퇴한 저는 마음이 착찹했습니다.

아무도 제게 길을 제시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광부였던 제가 유령인 채로 머더러 타워에 갖혀 있을 때 보다도 더욱 불안해져 있었죠.

며칠 뒤 디시트에서 그는 게이트를 타게 되었다.

아무나 허용된 제도 아래서라면 무차별 코포를 난사하고 싶었던

그에게 범죄자와 머더러가 가득한 타워로 가는 게이트라는 것이었다.

게이트를 내리자 타워 앞엔 열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웅성대고 있었고,

타워 안엔과연 그레이와 붉은 이름들이 눈에 띠었다.

개중엔 같은 소속이었던 H.K의 이름도 보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타워 밖과 타워 안의 싸움이었다.

누가 누구를공격 하는건지...

누가 타겟이 되는 것인지 질서 없는 언어와 칼질의 연속일 뿐인 의미 없는 싸움이었다.

Maddog 도 누군가에게 익스와 칼바를 맞았다.


- 그래 이런 것이라면...


누구에게로 향하는 분노인지도 몰랐다.

분노와는 틀리게 그의 숙련된 손놀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편에게 날라 갔고 그

는 타워밖의 브리타니안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그때였다. 타워 안에서 Ching 이 나왔다.


- Cool !


Ching 과 Maddog 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Balhae 라는 혹성에서 만났던 것을 특별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부둥켜 안았던 때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악연이라고 생각되는 자리에 그와 그가 서로를 보고 있었다.


- Where are u from?


Ching 이 무섭도록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 다시 말하겠어. 넌 누구지? 넌 브리타니안이냐? 한국인이냐?


Maddog 은 말하지 못했다.

잠시의 침묵을 허용할 사이도 없이 타워 밖의 브리타니안인지 한국인인지 알 수 없을 사람들 사이에서

코포가 외워졌고 Ching 은 Maddog의 눈앞에서 죽었다.

시체가 찢겨졌다. 그리고 Ching 은 다시 부활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코포를 난사 하고 할버드를 휘두르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귀와 눈엔 정적과 암흑이었다.

그는 Ching 의 시체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 다시는 Ching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수 있었죠.

제가 왜 이런 방법으로 Murderer 의 생을 택했는지..

그리고 이제 어딘가에서 사라지려 하는지....

당신에게 저도 확실한 답을 드릴수 없습니다.

브리타니아에서 사라진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 알게 될 수 있을까요?


Maddog 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필자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휘청거리듯 돌아섰다.

그 어딘가에서 " Hands Up! " "Drop All! " 이라는 말을 외치며

붉은 이름으로 죽어갈 Maddog 의 모습이 그의 뒷모습에 투영되어져 왔다.


정말 긴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끝을 듣고 필자도 뒤돌아서는

Maddog의 무거운 어깨와 발걸음 만큼 마음이 착찹했다.

백짓장처럼 머리속에 무만 남아있는 듯 했다. 많은 이야길 들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이제는 보이지 않는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 잘가라 .. 마지막 브리타니안이여...